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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참여 함께 나눔 – 전교인 선교운동’ 본격화

작은 사랑의 실천이 전도의 시작 … 7월 첫 주 실천강조 주간
대총회가 ‘모두 참여 함께 나눔’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중점 추진하는 ‘전교인 선교운동(Total Member Involvement)이 한국에서도 본격화된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브리 13:16)
대총회가 ‘모두 참여 함께 나눔’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중점 추진하는 ‘전교인 선교운동(Total Member Involvement)이 한국에서도 본격화된다.

한국연합회는 7월 첫째 안식일을 전교인 선교운동 강조 안식일로 정하고, ‘전교인 선교운동 결의대회’를 열어 성도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역사회에서의 교회 역할을 고양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각 교회는 오는 7월 2일 또는 9일 안식일학교 시간에, 산하 기관은 7월 4일 또는 11일 월요일 아침 예배시간에 결의대회를 열고, 세계 교회의 일원으로서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이를 기해 전교인 선교운동의 목적과 내용, 방법이 모든 교회 구성원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되어 장려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재림성도는 영혼구원 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 새롭고 대범한 운동은 전 세계 재림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그리고 삶으로 전하는데 함께하도록 독려한다.

대개 개인전도나 선교를 떠올리면 전도지 혹은 소책자를 들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집집방문을 하는 것을 연상하는데, 이 운동은 일상에서 재림성도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아주 자연스럽게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때문에 특정 분야나 방식을 주지하지 않고, 누구라도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테면 아픈 이웃이나 동료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고, 이들을 친교모임에 초청해 관계를 맺거나, 외부출입이 어려운 환자에게 카드와 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주변 사람들을 칭찬하는 습관을 기르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책을 선물하거나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는 작은 친절도 전도의 일환이다.

삶의 현장에서 접촉하는 모든 이들에게 ‘참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게 근본 취지다. 행동과 표현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선한 이웃’이라는 목적만큼은 같다는 것이다. 이웃과의 접촉점을 찾고 관계를 쌓는다면 기회가 찾아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다.

한국연합회장 황춘광 목사는 이와 관련 <교회지남>과의 인터뷰에서 “이 운동은 일회적인 선교 행사가 결코 아니”라며 “우리는 재림성도다. 재림은 희망 중의 희망이다. 이 운동은 재림성도의 삶을 ‘희망을 나누는 자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이고, 이웃의 삶을 ‘희망을 품는 자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재림의 날까지 펼쳐야 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연합회 안교선교부(부장 이병주)도 “전도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이라며 “재림성도가 있는 그 자리에서 사랑과 친절의 띠가 출발하여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를 묶고 온 나라를 묶어낼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재림교인은 ‘선한 이웃’이라는 분명한 이미지가 새겨질 때까지 모든 부서, 모든 교인이 이 작지만 행복한 운동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모두 참여 함께 나눔’ – TMI

– 채영석 / 한국연합회 안교선교부부장

“당신은 천사입니까?”
“아니요, 우리는 세 천사인데요.”
“세 천사는 뭡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바벨론이 무너진다고 경고하며, 짐승의 표를 받으면 멸망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
세 천사는 여러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잘 알다시피 복음이란 ‘좋은 소식’이다. 게다가 영원한 복음이니 얼마나 좋은 소식이겠는가? 복음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대한 소망과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이러한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누가복음 4장 18, 19절에 따르면 복음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현재의 필요를 채워주는 구체적인 행위와 미래에 이를 해방의 날에 대한 약속과 소망이 있다. 즉 현재의 구체적인 행위가 다가올 미래를 밝혀준다. 복음은 죄와 이기심으로 물든 세상에서 특이하고 주목할 만한 일이 된다. 그래서 세 천사의 기별이 영원한 복음이라면 그것이 제시하는 미래는 현재의 행위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천제일교회는 시골의 작은 교회다. 그러나 그 교회는 적극적으로 기독교 봉사를 실천한다. 처음에는 어린이와 학생들이 그 일을 시작했다. 가까운 요양원을 방문해 음악을 연주하고 말벗 봉사를 실천했다. 아이들의 봉사가 바탕이 돼 이제는 전 교인이 요양원 봉사에 참여한다. 수공, 발마사지, 산책 동행 등 봉사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야말로 ‘모두 참여 함께 나눔’이 됐다. 이 교회는 TMI가 너무 좋다. 그래서 TMI 100가지 제안을 교회 벽면에 붙여놨다. 이천시는 이 작은 교회의 봉사에 주목해 지난달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사람들은 세상의 어둠을 밝혀줄 천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세 천사가 돼야 한다.
“당신은 천사입니까?”
“네, 우리는 세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아주 어릴적 언젠가 ‘오하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라는 책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이 책을 다시 접했습니다. 또 다른 느낌 입니다.


 

오하라 씨는 중학교때 왕따를 당하는 것으로 삶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왕따로 인해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 그 후로 비행청소년과 어울리며 사고를 치고

부모님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예사요, 더 나아가 폭력집단에 들어가 온몸을 문신으로 휘감고

결국은 거리를 배회하는 호스티스의 삶까지 이르고 맙니다.

가족마져 그녀를 버리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것 같은 그때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0f94fe88e5bd375feb70ceb0d55dffba아버지 친구 아저씨의 진심을 담은 호통이 그녀의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지요.

아저씨의 도움,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그녀는 사법고시에 합격, 마침내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왕왕 울렸다. 그분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을 만났어. 나를 인간으로 대해 주셨어.

기쁨으로 몸이 떨렸다. 나는 엉엉 울었다.

내가, 내 인생이 이렇게 된 이유를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다.

전부를 다 알아주지 않아도 좋았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좋았다.

내 마음을 알고 다가와주는 사람이 나는 그리웠다.’


현장에 잡혀온 여인의 인생을 바꾼것은 사람의 정죄가 아닌

%ea%b0%84%ec%9d%8c%ed%95%9c%ec%97%ac%ec%9d%b8예수님의 용서였습니다. 그분의 용서는 잘못된 것에 대한 묵인이 아닌,

사람의 약함을 아시는 공감능력 입니다.

이제는 우리함께 서로를 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공감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지만 죄 없으신 분 입니다 히브리서 4:15′

 

얼마전 인터넷 한 블로그에서 인상깊은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제가 읽은 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한 엄마의 자궁속에 두명의 아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명이 다른 한명에게 물었습니다.

wpid-151039_4210500773591_710088986_n1“출산후의 삶을 믿어?”

다른 한명이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지. 출산이후에는 분명히 무엇인가가 있어. 아마 우리는 이곳에서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게 아닐까?”

“헛소리하지마” 첫째가 말했습니다. “출산 이후의 따윈 없어. 대체 어떤 종류의 인생이 있을 있단 말야?”

둘째가 말했습니다.잘은 몰라, 하지만 여기보단 밝을거야. 어쩌면 우린 다리로 직접 걷고 입으로 음식을 먹을지도 몰라. 아마 우리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감각들을 얻을 수도 있겠지.”

첫째가 한심하다는 듯 받아쳤습니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거야? 걷는다는건 불가능해.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웃기는 소리! 탯줄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주잖아. 그렇지만 탯줄은 너무 짧아. 그러니까 출산 이후의 삶이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둘째는 주장했습니다., 생각엔 여기와는 전혀 다른 존재하지 않을까? 아마 탯줄이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몰라.”

첫째가 대답했습니다.헛소리는 집어치워! 그래, 출산 이후의 삶이 있다고 치자. 아무도 거기로부터 돌아오질 않는거지? 출산이 결국 인생의 끝이야. 출산 이후에는 그저 어둠과 침묵, 그리고 잊혀짐만이 존재한다고. 출산은 우릴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아.”

, 나도 모르겠어.” 둘째가 말했습니다.하지만 우린 분명히 엄마를 만나게 될거고, 엄마가 우릴 돌보실거야.”

첫째가 대답했습니다.엄마? 진짜 엄마를 믿어? 웃기는 소리야. 만약 엄마가 존재한다면 지금 어디에 있는데?”

둘째가 말했습니다.엄마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어. 우리는 그녀에게 둘러 쌓여있지. 우리는 그녀의 일부야. 엄마 안에 우리가 살아간다고. 엄마가 없이 세상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었어.”

첫째가 흥분한듯 받아쳤습니다. “나한텐 엄마가 안보이는걸, 엄마가 우릴 사랑하고 우리와 함께 있다면 왜 우리에게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거지? 왜 우리를 어둠속에 내버려두는거냐구! 그러고도 엄마가 우릴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나? 내가 생각하는 논리적인 하나의 결론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거야.”

둘째가 대답했다, “네가 만약 조용히 집중해서 들으려고만 한다면 엄마의 존재를 느낄 있을거야. 그리고 위로부터 우릴 부르는 엄마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도 들을 있겠지.”


어떻게 읽으셨나요? 실제로 이런일은 있을 수 없겠죠.

이 이야기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자세를 비유로 설명한 글 입니다.

가끔은 우리의 상식밖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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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요1:3)

뱃속의 아이가 출산이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는 재림이후의 삶을 감히 이해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한 것이며,

그분만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그것’의 실현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며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 입니다 (롬1:17)

또한 믿음은 육안으로 볼수없는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서부교회가 말씀속에서 번뜩이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

다시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백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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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퇴계이황의 ‘고인도 날 못보고’ 라는 시 입니다.

이황선생은 이 시를 통해 옛 성현의 가르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데요,

재림교인의 자세가 이황선생이 말하는 그것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떠나간 옛 ‘고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일말의 교훈이 된다면,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스스로를 일컬어 내가 곧 생명의 떡 (요6:35)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의 떡은 우리가 가나안 하늘도성까지의 여정가운데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양식입니다.

이 생명의 떡 외에는 우리에게 다른 음식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행4:12)

매일아침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주우러 나가볼까요?

혼자 아닌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말입니다.

예수님을 비록 볼수는 없지만, 그가 가셨던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어찌 따라가지 않으리.

 

 

Chick hatching from egg on egg tray

줄탁동시啐啄同時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걀속에서 병아리가 부화할때 껍질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것을 줄 어미가 밖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같이 이루어 질때 줄탁동시라고 한답니다.

구원은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구원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달걀의 부화과정에서 줄탁동시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우리 진짜 인생의 시작을 위해 죄라는 껍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어미닭이 껍질을 깨주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부모되시는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병아리가 껍질 속에서 몸부림 치는 것은 어미 닭이 그 작은 생명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죄라는 껍질가운데서 몸부림 치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안에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안의 죄를 가지고 때로는 절망하고 그러나 다시금 일어나 싸우고 투쟁하는 것은
결코 행위로 말미암는 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강권으로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교회의 가르침들은 언제나 율법주의 아닌 율법주의가 될 위험성을 가집니다.
율법주의는 결국 선을 행하고자 하는 중심에 내가 서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주체가 나에게 있기때문에 껍질 밖의 어미닭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인은 죄와의 투쟁가운데서 자신의 무력함을 철저히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죄라는 껍질 너머에서 자신의 부리로 죄를 쪼아 부스러뜨리는 어미닭의 존재를 의지하는 병아리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하기가 피곤하고 권태로운가요?
줄탁동시의 신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미닭의 기운, 나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면

껍질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새 생명을 향한 열망도 사그라들고 마는것 입니다.

나를 천사로 만든 사람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한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간호사 돕는 일을 했다.
여름 방학 내내 일주일에 서른 시간 정도를 일했는데, 그 대부분의 시간을 길레스피 씨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서 보냈다.
길레스피 씨에게는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의 상태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하면서 여러 날 동안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어느덧 그는 나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비록 그가 이따금 내 손을 꼭 잡는 것 말고는 아무런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길레스피 씨는 장기간 의식 불명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일주일간 부모님과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왔다. 내가 병원으로 갔을때 길레스피 씨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나는 간호사에게 차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래서 많은 질문을 가슴에 묻어둔 채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자원 봉사자 일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몇 해가 흘러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주유소에서 나는 낮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가 누구라는 걸 떠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길레스피 씨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 혹시 다섯 해 전에 의식불명 환자였던 길레스피 씨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를 어떻게 아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그에게 이야기를 하며 보냈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따뜻한 두 팔로 나를 껴안았다.
그는 자신이 혼수 상태에 있을 때 내가 그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고,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의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이 한 인간이 아니라 천사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길레스피 씨는 자신을 소생시킨 힘은 바로 내 목소리와 내 손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고, 무슨 일 때문에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도 설명했다.
우리는 둘 다 한없이 눈물을 쏟다가 다시 포옹을 하고는,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그 이후로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길레스피 씨는 내 마음을 날마다 알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 주었다.
나는 내가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내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결코 그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나를 천사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안젤라 스터길

응답받는 기도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려면 찬양이 포함되어야 함

우리의 헌신적 활동이 구하고 받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필요는 생각하고 우리가 받는 혜택은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그분의 자비를 받는 자이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하여 그분을 결코 찬양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기도하지 않고, 감사하는 일에 지나치게 인색하다. 만일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가 더 많은 감사와 찬양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으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훨씬 더 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점점 더 풍성해지고 그분을 더욱 찬양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대는 그대의 현 상태를 바꾸고 그대의 간구에 찬양을 더하라. 그대가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생각할 때 그대는 그분께서 그대의 필요를 생각하시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도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나 찬양하는 일을 잊지 말라.(교회증언 5권, 317)

 

Praise Needs to Be Included if Our Prayers Are to Be Answered

Shall all our devotional exercises consist in asking and receiving? Shall we be always thinking of our wants and never of the benefits we receive? Shall we be recipients of His mercies and never express our gratitude to God, never praise Him for what He has done for us?

We do not pray any too much, but we are too sparing of giving thanks. If the loving-kindness of God called forth more thanksgiving and praise, we would have far more power in prayer. We would abound more and more in the love of God and have more bestowed to praise Him for.

You who complain that God does not hear your prayers, change your present order and mingle praise with your petitions. When you consider His goodness and mercies you will find that He will consider your wants.

Pray, pray earnestly and without ceasing, but do not forget to praise. —(Testimonies for the Church 5: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