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6년 1월월

2016년 1월 29일 기도력 – 마지막날의 속임수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

인기 있는 신앙 부흥은 인간의 상상력에 호소하고 감성을 자극하며 새롭고 놀라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는 방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거기서 배출된 회심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갈망하지 않고 선지자와 사도들의 증언에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종교 집회에 그들은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냉철한 이성에 호소하는 기별은 그들에게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들의 영원한 유익과 직접 관련된 성경의 분명한 경고에도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과 영원한 일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로 여깁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기 있는 교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정신은 어디로 가 버린 것입니까?
…과거 반세기 동안 일어난 신앙 부흥의 대부분에는 그런 영향이 얼마간 존재했습니다. 장래에는 이것이 더욱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감정적 흥분이 일어나고 진리와 거짓이 뒤섞여서 여차하면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속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런 운동의 진상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성경의 증언을 무시할 때마다, 자신과 세상을 버려야 한다는 분명하고도 심령을 살피게 하는 진리에서 돌아설 때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않을 게 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알려주신 법칙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운동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은 게 확실합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사탄의 속임수에서 모두 보호받습니다.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악이 일반 종교계에 들어오도록 문이 열린 이유는 진리를 소홀히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율법의 특성과 중요성이 대부분 상실되었습니다. 하나님 율법의 성격과 영속성과 그 의무에 대한 그릇된 개념이 회개와 성화의 관계에 대한 오류를 가져왔고 그 결과 교회 내에서 경건의 표준이 낮아졌습니다. 우리 시대의 신앙 부흥 가운데 하나님의 영과 권능이 결핍된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각 시대의 대쟁투>, 463~465

2016년 1월 28일 기도력 – 시선을 그리스도께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했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했느니라”(마 13:17).

교회를 둘러싼 위험에 관한 하나님 말씀의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사도 시대에 사람들이 전통과 철학으로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려고 노력한 것처럼 오늘날도 의의 원수는 고등 비평, 진화론, 강신술, 신지학(神智學), 범신론(汎神論) 등 그럴듯한 이론으로 영혼을 금단의 길로 인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성경은 기름 없는 등과 같습니다. 오해와 혼란을 부추기는 추론적인 믿음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고등 비평은 성경을 난도질하고 추측하고 재구성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믿음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다스리고 향상시키고 감명시키는 성경의 능력을 빼앗고 있습니다. 대중은 강신술에 현혹되어 욕망이 최고의 법이고 방종은 자유이며 인간은 자기만 신경 쓰면 된다고 믿도록 가르침 받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 사도가 골로새 신자에게 경고한 “교묘한 말”과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강신술적인 성경 해석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성경의 영원한 진리를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눈을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고, 밝혀 주신 길로 꾸준히 전진하면서 그분의 가르치심에 어긋나는 모든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명상과 묵상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직접 말씀하신 음성인 것처럼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신성한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구원얻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지녀야 합니다. 이것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지식입니다. 이것을 삶에 받아들이면 영혼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재창조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이 지식을 받아들이라고 초청하십니다. 이것 외에 모든 것은 헛되고 무익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품성 건설을 위한 참기초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원칙들인 것입니다. 유일하게 안전하고 확실한 법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 19:8; 15:5).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도들은 당시의 거짓 교리에 맞섰습니다(고전 3:11).

<사도행적>, 474~475

2016년 1월 27일 기도력 – 과학과 성경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 38:4).

자연이라는 책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둘 다 같은 창조주의 마음을 담고 있으므로 서로 일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방법과 다른 언어로 똑같이 큰 진리를 증언합니다. 과학은 끊임없이 새롭고 경이적인 것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올바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과학의 탐구로 발견되는 것은 거룩한 계시인 성경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자연계의 책과 성경은 서로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법칙의 일부를 알려 줌으로써 자연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줍니다.
과학과 성경이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자연에서 관찰된 사실로부터 추론을 잘못 이끌어 냈기 때문입니다. 또 과학과 성경의 조화를 추구하려다가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훼손하고 파괴시키는 성경 해석 방법이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창조에 관한 모세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지질학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지질학에서는 지구가 혼돈된 상태로부터 진화하는 데 수백만 년이 걸렸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의 사실을 과학이라는 상상적 가설에 맞추다 보니 창조의 기간을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이라는 실로 어마어마하고 막연한 기간으로 추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론은 절대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그 자체가 일관성이 있으며 자연의 가르침과도 일치합니다. 창조에 사용된 첫째 날에 대하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동일한 설명이 창조 주간의 제6일까지 계속됩니다. 창조 기간의 하루는 창조 이후의 하루처럼 아침과 저녁이 있는 하루였다고 영감의 말씀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창조 사업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진술합니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이처럼 무수한 세계를 말씀으로 있게 하신 하나님이라면 이 땅을 혼돈의 상태에서 발전시키기 위해 과연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했단 말인가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한단 말입니까?
…태초에 “수면에 운행”하신 성령, “모든 것을 창조하신” 말씀이신 분,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도움을 통해서만 과학의 증언은 올바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교육>, 128~129, 134

2016년 1월 26일 기도력 – 구원의 과학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시 68:20).

이것이 성경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보화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교과서이며 그의 위대한 교육서입니다. 모든 참된 과학의 기초는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우리는 모든 분야의 지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 모든 과학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 중의 과학인 구원의 과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보화가 들어 있는 금광입니다.
참된 고등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순종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두고, 사람을 하나님과 천국으로 이끌지 못하는 서적을 선택하면 거기서 얻은 교육이란 교육의 왜곡에 불과합니다.
자연에는 신비한 진리가 있습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은 진리로 가득합니다. 이것들 모두가 우리의 교사입니다. 자연은 큰소리로 하늘의 지혜와 영원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죄로 눈이 어두워져서 자신들이 직접 자연계를 설명할 때는 꼭 자연을 하나님 위에 둡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자들의 마음에는 바른 가르침이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합니다. 그들 때문에 자연의 가르침이 너무도 곡해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받고 창조주에게서 마음이 떠납니다.
인간의 지혜가 하늘 교사의 지혜보다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과서인 성경책은 구식이며 케케묵었고 아무 재미가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통해 활기를 얻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무한히 값진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밭을 삽니다. 그들은 위대한 저술가로 소문난 사람의 가설이 담긴 책 대신에 일찍이 이 세상에 없었던 가장 위대한 저술가요 교사이자 자기 목숨을 버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분의 말씀을 택합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그분의 말씀 역시 진리입니다. 그 말씀에는 표면에 나타난 것 이상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모든 말씀에는 꾸밈없어 보이는 소탈함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성령으로 각성된 사람만이 이 말씀의 가치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숨겨져 있어도 그들은 진리의 보화를 찾아냅니다.

<실물교훈>, 107~108, 110

2016년 1월 25일 기도력 – 위대한 교육가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믿어라. 잘난 체하지 말고”(잠 3:5, 공동번역).

성경은 가장 수준 높은 사람도 놀라고 매력에 사로잡힐 만큼 단순하게 그리고 인간의 필요와 갈망에 꼭 들어맞게 진리를 공개하는 한편, 가장 미천하고 소양 없는 사람도 구원의 길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리석지만 도보로 여행하는 자는 그 길에 잘못 들지 않을 것이라”(사 35:8, 한글킹제임스). 어린아이라도 그 길을 잘못 들 일이 없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길을 찾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그 깨끗하고 거룩한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단순하게 소개된 이 진리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높고 아득하고 무한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감추어져 있는 신비인 것입니다. 그 신비로움은 연구자의 마음을 압도시키는 한편 신실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에 경외와 믿음을 불어넣습니다. 성경을 탐구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념은 더욱 확고해지며 인간의 이성은 장엄한 하나님의 계시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찾는 자에게 언제나 그 말씀의 진리들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십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것입니다(신 29:29).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성경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장 중요한 진리 중 몇 가지가 소홀히 취급받았습니다. 성경이 불가사의한 이유는 하나님이 진리를 숨기려고 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우둔함 내지는 무지로 말미암아 진리를 이해하거나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 이 점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한하신 것이 아니라 문제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깨달을 수 없는 문제라고 자주 지나쳐 버리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력이 다하는 대로 깨닫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인간의 지력으로는 성경의 진리 하나, 약속 하나도 완벽하게 터득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관점에서 말씀의 빛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은 저런 관점에서 말씀의 빛을 발견하지만, 우리는 그저 희미한 빛을 발견할 뿐입니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위대함을 명상한다는 것은 샘물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갈수록 더 넓고 깊어지는 샘입니다. 그 넓이와 깊이를 우리의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물길을 따라갈수록 그 광경은 넓어집니다. 점점 넓어져서 어느새 우리 눈앞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습니다.

<교육>, 170~171

성경 암송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인 이유

성경 암송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인 이유

1.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다 …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 서 영광에 이르니“(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려 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는 말씀을 통해 가능해집니 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 (사무엘상 3:21) 성경 암송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지속적이고 분명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2. 죄와의 싸움에서의 승리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 이니이다. . . .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9,11). 바울은 우리가 “영으로써 몸의 [악한 ]행실을 죽여야”한다고 말합니다(로마서 8:13). 그 죽이는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17). 죄는 몸을 악한 행실로 유 혹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고 죄가 주는 것에 비해 더 나은 그리스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갖고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 다.

3.사탄과의 싸움에서의 승리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암송하고 있는 말씀을 사 용해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마태복음 4:1-11).

4.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권고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위로와 권고를 기대할 때 여러분의 손에 성경책이 들려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암송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잠언 25:11은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 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 속에 말씀이 가득 차 있을 때, 경우에 합당한 축복의 말이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5.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는 성경을 갖고 있지 않을 때에도 찾아옵니다. 실제 성 경 구절들은 그 자체로 예리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암송되어 말 해질 때 그 말씀들은 암송할 만큼 충분히 귀중하다는 증거가 주어지게 됩니다 . 우리는 복음을 네 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함/법/영광, 2) 사람의 죄/반역/불순종, 3)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 4) 믿음으로 인해 거저 주어지는 생명의 선물.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한두 구절을 암송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것들을 나눌 준비를 하십시 오.

6.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길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존 경과 사랑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속성의 가치를 반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성경 말씀을 우리 의 마음에 저장하는 것은 그분의 진정한 모습과 관계하도록 도와 줍니다. 예 를 들어, 하루 종일 아래의 내용을 마음에 상기시킬 수 있다고 상상해 보십 시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 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 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 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 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 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편 103:8-14)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길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저는 “즐거워하면서”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감정적으로 불구 상태입니다. 전부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단계까지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한가지 방법은 성경에 있는 감 정적 표현들을 암송하고 그 감정들이 우리의 일부가 될 때까지 주님께 그리고 서로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103:1에서 우리는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라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과 성경의 다른 감정적인 표현들을 암송하고 자주 말하여 주님께 그 감정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 실제가 되도록 구하면서 말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그런 감정과 표현으로 자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덜 무능하게 되며 적절한 찬 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16년 1월 21일 기도력 – 기초가 튼튼한 마음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 13:8).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뜻이 순결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깊이 믿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도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천사들이 가까이 갑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풍성한 진리의 보화를 열어 보이십니다.
좋은 마음 밭을 지닌 청중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할 것입니다. 사탄이 자기의 모든 악한 부하를 총동원할지라도 능히 그 말씀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유익을 얻으려면 자기에게 제시된 진리를 깊이 명상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담긴 진리의 의미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명령에 담긴 정신을 깊이 들이마셔야 합니다.
위대하고 청결한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하고, 구원의 위대한 계획에 나타난 기이한 역사를 연구하기를 그분은 바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더욱 진지한 마음으로 마음의 순결과 사상의 깨끗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거룩하고 순결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심령은 성경 연구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가운데 변화될 것입니다.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20).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순종의 열매를 맺습니다. 마음속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선행 속에 나타납니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과 생애가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또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요 5:30)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유전과 후천적으로 이루어진 품성과 생활 습관 등과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마음 밭을 지닌 청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계시된 모든 요구 조건을 다 받아들입니다.

<실물교훈>, 59~60

2016년 1월 20일 기도력 – 왜 의심할까 ?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했느냐”(마 14:31).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신령하신 저술자의 품성처럼 유한한 사람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신 것, 거듭남, 부활, 그 외에 성경 가운데 있는 여러 문제는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하거나 충분히 이해하기에 너무도 깊은 신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해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자연계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일이 가득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철학자들도 가장 하등 한 생명체의 문제조차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세계에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가득하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있을까요?
…회의론자들은 성경을 반대하는 논지의 근거로 성경의 난제들을 들이댑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만약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들어 있다면, 그분의 위대함과 위엄을 유한한 인간이 다 파악할 수 있다면, 그런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지닌 책이 틀림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소개된 거대하고 신비한 주제야말로 그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가장 수준 높은 사람도 놀라고 매력에 사로잡힐 만큼 성경은 단순하게 그리고 인간의 필요와 갈망에 꼭 들어맞게 진리를 공개하는 한편, 가장 미천하고 소양 없는 사람도 구원의 길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소개된 이 진리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높고 아득하고 무한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그것을 선언하셨으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속의 계획이 우리에게 밝히 드러났으므로 각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구원받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처럼 쉽게 이해되는 진리 안에는 신비함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감추어져 있는 신비인 것입니다. 그 신비로움은 연구자의 마음을 압도시키며 신실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에게 경외와 믿음을 불어넣습니다. 성경을 탐구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념은 더욱 확고해지며 인간의 이성은 장엄한 하나님의 계시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정로의 계단>, 106~108

긍적적인 것을 추출해 내기.

죄와 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말씀이라서 공유합니다.

환경에서 긍정적인 것을 추출해 내라

그대를 모두는 호수 한가운데 피어 있는 아름다운  수련화를  적이 있을 것이다우리는  꽃봉오리를 가졌으면 하고 얼마나 열망하고 바라고  따기 위해 노력했던가 주위에 찌끼와 파편과 오물이 많이  있을지라도 수련화를 따서 가졌으면 하는 그대의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우리는 그토록 많은 오물이 있는 곳에 어떻게 수련화가 그토록 아름답게   있는지 놀랄 뿐이다.

 줄기는 물밑 황금빛 모래로 뻗어 내려가서 수련화에 영양을 공급하는 가장 순수한 물질만을 모아들여마침내 우리가 보다시피 순결하고  없는 꽃을 피운다이것이 우리에게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가마땅히 그래야 한다그것은 우리 주변 도처에 죄악이 관영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접근해서는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세상에 있는 죄악과 사악함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그대의 마음을 높여 그대의 구주에 대해 말하라그대가 주변 도처에 있는 죄악을  그분이 우리의 구주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로 인해 그대는 더욱더 기뻐할  있다.

 그럴진대우리가 주위에 있는 죄악을 바라보고 어두운 측면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는가우리는 그것을 치유할  없다그렇다고  높고  낫고더욱 고상한 것에 대해 말하라마음에 좋은 인상을 남길 만한 것들에 대해 말하라그리하면 모든 영혼이  죄악에서 끌어올려져  너머에 있는 빛에 들어가게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2, 798.

 

 

Extract the Positive from Environment

You have all seen on the bosom of the lake the beautiful white lily. How anxious we have been, how we have wished and worked that we might get that blossom. No matter how much scum and debris and filth there is around it, yet that does not destroy your desire for the lily. We wonder how the lily can be so beautiful and white where there is so much filth.

 Well, there is a stem that strikes down to the golden sands beneath and gathers nothing but the purest substance that feeds the lily until it develops into the pure and spotless flower, as we see it. Should not this teach us a lesson? It ought to. It shows that although there is iniquity all around us we should not approach it. Do not talk of the iniquity and wickedness that are in the world but elevate your minds and talk of your Savior. When you see iniquity all around you, it makes you all the more glad that He is your Savior and we are His children.           

 Then shall we look at the iniquity around us and dwell upon the dark side? You cannot cure it; then talk of something that is higher, better, and more noble. Talk of those things that will leave a good impression on the mind, and it will lift every soul up out of this iniquity into light beyond.

— Mind, Character, and Personality 2, 798.

2016년 1월 19일 기도력 – 역사속에 활동하시는 하나님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단 2:21).

성경은 인류가 지닌 가장 오래되고 가장 포괄적인 역사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온 신선한 역사의 물줄기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 순결성을 보존해 왔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꿰뚫어 보려 해도 알 수 없는 먼 과거를 성경은 비추어 준다. 땅에 기초를 놓고 하늘을 펴신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들의 기원에 대하여 믿을 만한 기록은 여기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자부심이나 편견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인류 역사의 기록은 성경에만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의 흥망은 마치 인간의 의지나 능력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건의 대부분이 그들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해 생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커튼이 걷혀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관계, 권력, 야망의 배후와 그 상부와 그 진행 과정 속에서,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의 일꾼들이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실현해 가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참된 역사 철학을 보여 줍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의 현자들에게 전한 유례없이 아름답고 친절한 말속에는 인류의 창조와 모든 민족의 분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행 17:26~27).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언약의 줄”(겔 20:37)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지으신 목적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자신과 상대에게 복이 되고 창조주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목적에 맞게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라고 언급합니다.
국가와 개인을 위한 참된 번영의 기초가 되는 원칙을 하나님은 율법 가운데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이것은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신 4:6; 32:47)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증된 복은, 똑같은 조건과 똑같은 수준으로 천하의 모든 국가와 모든 개인에게도 보증되었습니다.

<교육>, 173~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