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6년 10월월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아주 어릴적 언젠가 ‘오하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라는 책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이 책을 다시 접했습니다. 또 다른 느낌 입니다.


 

오하라 씨는 중학교때 왕따를 당하는 것으로 삶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왕따로 인해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 그 후로 비행청소년과 어울리며 사고를 치고

부모님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예사요, 더 나아가 폭력집단에 들어가 온몸을 문신으로 휘감고

결국은 거리를 배회하는 호스티스의 삶까지 이르고 맙니다.

가족마져 그녀를 버리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것 같은 그때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0f94fe88e5bd375feb70ceb0d55dffba아버지 친구 아저씨의 진심을 담은 호통이 그녀의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지요.

아저씨의 도움,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그녀는 사법고시에 합격, 마침내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왕왕 울렸다. 그분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을 만났어. 나를 인간으로 대해 주셨어.

기쁨으로 몸이 떨렸다. 나는 엉엉 울었다.

내가, 내 인생이 이렇게 된 이유를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다.

전부를 다 알아주지 않아도 좋았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좋았다.

내 마음을 알고 다가와주는 사람이 나는 그리웠다.’


현장에 잡혀온 여인의 인생을 바꾼것은 사람의 정죄가 아닌

%ea%b0%84%ec%9d%8c%ed%95%9c%ec%97%ac%ec%9d%b8예수님의 용서였습니다. 그분의 용서는 잘못된 것에 대한 묵인이 아닌,

사람의 약함을 아시는 공감능력 입니다.

이제는 우리함께 서로를 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공감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지만 죄 없으신 분 입니다 히브리서 4:15′

 

얼마전 인터넷 한 블로그에서 인상깊은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제가 읽은 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한 엄마의 자궁속에 두명의 아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명이 다른 한명에게 물었습니다.

wpid-151039_4210500773591_710088986_n1“출산후의 삶을 믿어?”

다른 한명이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지. 출산이후에는 분명히 무엇인가가 있어. 아마 우리는 이곳에서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게 아닐까?”

“헛소리하지마” 첫째가 말했습니다. “출산 이후의 따윈 없어. 대체 어떤 종류의 인생이 있을 있단 말야?”

둘째가 말했습니다.잘은 몰라, 하지만 여기보단 밝을거야. 어쩌면 우린 다리로 직접 걷고 입으로 음식을 먹을지도 몰라. 아마 우리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감각들을 얻을 수도 있겠지.”

첫째가 한심하다는 듯 받아쳤습니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거야? 걷는다는건 불가능해.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웃기는 소리! 탯줄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주잖아. 그렇지만 탯줄은 너무 짧아. 그러니까 출산 이후의 삶이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둘째는 주장했습니다., 생각엔 여기와는 전혀 다른 존재하지 않을까? 아마 탯줄이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몰라.”

첫째가 대답했습니다.헛소리는 집어치워! 그래, 출산 이후의 삶이 있다고 치자. 아무도 거기로부터 돌아오질 않는거지? 출산이 결국 인생의 끝이야. 출산 이후에는 그저 어둠과 침묵, 그리고 잊혀짐만이 존재한다고. 출산은 우릴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아.”

, 나도 모르겠어.” 둘째가 말했습니다.하지만 우린 분명히 엄마를 만나게 될거고, 엄마가 우릴 돌보실거야.”

첫째가 대답했습니다.엄마? 진짜 엄마를 믿어? 웃기는 소리야. 만약 엄마가 존재한다면 지금 어디에 있는데?”

둘째가 말했습니다.엄마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어. 우리는 그녀에게 둘러 쌓여있지. 우리는 그녀의 일부야. 엄마 안에 우리가 살아간다고. 엄마가 없이 세상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었어.”

첫째가 흥분한듯 받아쳤습니다. “나한텐 엄마가 안보이는걸, 엄마가 우릴 사랑하고 우리와 함께 있다면 왜 우리에게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거지? 왜 우리를 어둠속에 내버려두는거냐구! 그러고도 엄마가 우릴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나? 내가 생각하는 논리적인 하나의 결론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거야.”

둘째가 대답했다, “네가 만약 조용히 집중해서 들으려고만 한다면 엄마의 존재를 느낄 있을거야. 그리고 위로부터 우릴 부르는 엄마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도 들을 있겠지.”


어떻게 읽으셨나요? 실제로 이런일은 있을 수 없겠죠.

이 이야기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자세를 비유로 설명한 글 입니다.

가끔은 우리의 상식밖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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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요1:3)

뱃속의 아이가 출산이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는 재림이후의 삶을 감히 이해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한 것이며,

그분만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그것’의 실현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며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 입니다 (롬1:17)

또한 믿음은 육안으로 볼수없는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서부교회가 말씀속에서 번뜩이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

다시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백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월 22일 안식일

22일 안식일에는 기존에 만들었던 성소모형을 가지고

성소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소 입구 부터 시작하여 지성소의 법궤까지 성소를 구성하는 모든 물건들이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상징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녁에는 최정은 자매 집에서 모여 다락방 모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이 날에는 대니얼 손 의 친구인 제이슨이 함께 참석해 기쁨이 더 컸습니다.

하나님의 나날이 새로운 영혼을 채우시는 부흥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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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퇴계이황의 ‘고인도 날 못보고’ 라는 시 입니다.

이황선생은 이 시를 통해 옛 성현의 가르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데요,

재림교인의 자세가 이황선생이 말하는 그것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떠나간 옛 ‘고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일말의 교훈이 된다면,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스스로를 일컬어 내가 곧 생명의 떡 (요6:35)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의 떡은 우리가 가나안 하늘도성까지의 여정가운데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양식입니다.

이 생명의 떡 외에는 우리에게 다른 음식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행4:12)

매일아침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주우러 나가볼까요?

혼자 아닌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말입니다.

예수님을 비록 볼수는 없지만, 그가 가셨던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어찌 따라가지 않으리.

 

 

9월 15일, Valley View 양로원 방문

9월 15일 안식일오후에는 청장년이 함께 Valley View 양로원을 방문,

준비한 노래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간중간에 실수한 부분도 있었지만,

끝까지 성의있게 들어주신 양로원 어르신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음에는 더 준비된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서부교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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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k hatching from egg on egg tray

줄탁동시啐啄同時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걀속에서 병아리가 부화할때 껍질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것을 줄 어미가 밖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같이 이루어 질때 줄탁동시라고 한답니다.

구원은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구원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달걀의 부화과정에서 줄탁동시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우리 진짜 인생의 시작을 위해 죄라는 껍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어미닭이 껍질을 깨주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부모되시는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병아리가 껍질 속에서 몸부림 치는 것은 어미 닭이 그 작은 생명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죄라는 껍질가운데서 몸부림 치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안에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안의 죄를 가지고 때로는 절망하고 그러나 다시금 일어나 싸우고 투쟁하는 것은
결코 행위로 말미암는 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강권으로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교회의 가르침들은 언제나 율법주의 아닌 율법주의가 될 위험성을 가집니다.
율법주의는 결국 선을 행하고자 하는 중심에 내가 서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주체가 나에게 있기때문에 껍질 밖의 어미닭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인은 죄와의 투쟁가운데서 자신의 무력함을 철저히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죄라는 껍질 너머에서 자신의 부리로 죄를 쪼아 부스러뜨리는 어미닭의 존재를 의지하는 병아리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하기가 피곤하고 권태로운가요?
줄탁동시의 신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미닭의 기운, 나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면

껍질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새 생명을 향한 열망도 사그라들고 마는것 입니다.

성소만들기 Making Sanctuary

8일 안식일에는 아이들과 구약성소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성소의 구조를 이론으로 간단하게 배운다음 함께 성소를 조립하였습니다.

생소하고 낯선 성소를 직접 손으로 체험하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성소모형은 90:1 의 비율로써 성소 울타리를 두르는 쇠 고리까지 성경에 묘사된 것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재현된 교재입니다. 청년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한번쯤 만들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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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02 어르신들 유쾌한 단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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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일요일 교회 어르신들과 함께 알곤퀸 주립공원으로 단풍놀이를 다녀왔습니다. 담임목사님과 안장로님께서 오고가며 라이드로 수고해주셨습니다. 가면서 들린 휴게소의 핫초코에서부터 낙엽으로 붉게 물든 호수를 바라보며 먹는 점심까지, 특히 강정금 대장님(?)의 필두지휘 아래 정말 재미있게 놀다 왔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